21세기 런던의 이미지를 바꾼 10개의 랜드마크(최종회)
15 MAY 2008 3,120 VIEWS NO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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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후│건축가, 런던대학(LSE) 도시계획학과 튜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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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서의 도시경관 만들기
지난 5회에 걸쳐서 21세기 런던의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10개의 랜드마크를 살펴보았다. 런던 시청, 거킨, 세인트 폴 대성당, 테이트 모던, 트라팔가르 광장, 팔라먼트 힐 광장, 카나리 워프, 사우스 뱅크, 서펜타인 파빌리온, 웸블리 스타디움 등이다.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은 10개의 랜드마크는 기능, 규모, 성격, 위치 등에서 매우 다양한 점이다. 또 지금도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므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런던이 도시 이미지에 관심을 집중한 것은 최근의 갑작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본격적인 출발은 17세기 전후라 할 수 있다. 16세기 무렵부터 런던은 유럽의 무역 중심지로 떠올랐다. 17세기를 거치면서 센트럴 런던을 중심으로 새로운 건물들이 집중적으로 들어섰고, 도시의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변했다. 왕실과 부를 축적한 무역상들은 런던을 당시 유럽의 라이벌이었던 베네치아나 암스테르담보다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고자 했다. 이를 통하여 좀 더 많은 상인과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17~18세기 동안 런던을 지배했던 화두 중 하나는 런던을 ‘북부의 베네치아’(Venice of the North)로 자리매김하는 것이었다. 이 무렵 유럽에서는 대부호들이 몇 달이나 몇 년 동안 주요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물건을 구입했는데, 런던 사람들은 이들에게 런던을 북부의 베네치아로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런던을 북부의 베네치아를 만들기 위하여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총체적 이미지를 고민한 점이다. 당시의 런던을 묘사한 그림들을 살펴보면 두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세인트 폴 대성당, 웨스트민스터 등과 같은 랜드마크를 의도적으로 도시의 중심에 위치하게 했다. 그리고 다양한 각도에서 많은 장면을 그렸다. 런던의 매력적인 모습을 찾고, 홍보하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다. 둘째, 템스 강 주변 런던의 모습을 베네치아나 암스테르담처럼 느껴질 정도로 유사하게 표현했다. 명실 공히 가장 아름다운 물의 도시로 인정받는 베네치아나 암스테르담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하여 심지어 당시 런던에 존재하지 않은 건물들을 상상하여 그려 넣기까지 했다.
아름다운 이미지와 도시경관을 창조하려는 런던의 노력은 19, 20세기를 지나면서 더욱 공고하게 자리 잡았다. 특히 영국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조지아 왕조, 빅토리아 왕조 시기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영국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독특한 건축양식과 기술이 등장했고, 당시 런던 사람들은 런던의 새로운 모습을 구성하는 데 이를 고스란히 적용했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도시경관의 틀이 완성될 수 있었다.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려는 런던의 노력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도시를 빠르게 재건하고,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재도약하는 것이 국가적 화두로 대두했다. 최우선적인 과제는 폐허가 된 런던의 물리적 기반시설을 효과적으로 재건하는 것이었다. 필연적으로 ‘보존론’과 ‘개발론’ 간에 충돌이 생겼다. 보존을 최우선해 신중하게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도시계획가들은 런던이 어떻게 보이는지가 런던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도시를 단기간에 복구하려는 정치인들과 개발론자들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시 강하게 부각한 것이 지난 16세기 이후 400여 년 동안 계승되어온 ‘예술적인 도시경관 만들기’다. 전후 복구라는 특수한 상황일지라도 런던이 지켜온 이미지와 그에 바탕을 둔 도시경관이 지속적으로 계승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60여 년 동안 진행된 런던의 개발이 성공적이었는지는 여러 각도에서 평가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도시경관을 다루는 작업이 도시계획의 가장 중요한 축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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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인 변화가 가능한 까닭은
그렇다면 이번에는 더욱 근본적인 부분을 살펴보자. 런던이 유럽을 대표하는 역사도시인데도 끊임없이 이미지를 바꾸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첫째, 런던의 독특한 정치·사회적 시스템이다. 런던이 지금과 같이 다양한 랜드마크를 중심으로 도시 구조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2세기 무렵부터다. 이 시기에 영국 왕실은 윈체스터에서 현재의 시티 오브 웨스트민스터(City of Westminster)로 옮겨왔다. 당시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은 무역 중심지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으므로, 근처로 왕실과 행정수도를 옮기는 것은 런던의 전체적인 발전을 위해 효과적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후 두 도시는 런던에 속해 있지만 상호 견제하고 균형을 유지하며 독립적으로 발전했다. 따라서 지난 800여 년 동안 웨스트민스터와 시티 지역에는 각기 다른 성격의 건축적·공간적 랜드마크들이 지속적으로 건립되었다. 웨스트민스터에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국회의사당, 버킹엄 궁전과 같은 국가 권위를 상징하는 건물과 하이드 파크, 켄싱턴 가든과 같은 대규모 공원과 광장들이 조성되었다. 반면에, 시티 지역에는 상업과 무역 중심 지역의 특성을 드러내는 건물들이 세워졌다.
특정 지역에 기반을 둔 이미지 개발은 센트럴 런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현재 런던은 1963년 이래로 32개의 지구(시티 오브 런던은 독립된 지구로 이를 포함하면 33개가 됨)로 세분화된다. 중앙정부가 거시적인 개발의 틀을 제공하긴 하지만, 32개의 지방정부는 사실상 런던 시와 도시개발에서 상하관계에 놓여 있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지역 재개발에서는 독자적인 면이 강하다. 예를 들어서 테이트 모던은 서더크, 사우스 뱅크는 서더크와 램버스, 웸블리 스타디움은 브렌트 지방정부의 주도적인 노력의 결과물이다. 즉 각각의 지방정부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유치함으로써 지역성에 뿌리를 둔 이미지를 개발하고 있다.
둘째, 일정한 간격을 두고 영국만의 건축양식이 존재했다. 예를 들자면 튜더·조지·빅토리아·에드워드 등 각 왕조를 대표하는 양식이다. 각각의 시기에 지어진 건물들은 건축학적 성패를 떠나서 결과적으로 다양한 모습이 혼재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영국만의 전통은 산업혁명과 근대, 현대를 거치면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예를 들어서, 영국은 현대건축의 주류 중 하나인 하이테크 건축의 선봉에 있으므로 21세기에 또 하나의 새로운 ‘이미지 켜’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런던 시청, 거킨, 웸블리 스타디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따라서 런던은 건축적으로 긴 시간 축적된 복합적 이미지를 드러낸다. 지난 8년 간 런던을 이끌어온 켄 리빙스턴(Ken Livingstone) 런던 시장은 “런던은 지금까지 유럽의 어떤 도시도 시도하지 못한, 끊임없이 변화에 도전함으로써 만들어진 혁명적 도시다”라고 역설했었다. 그가 말하는 도전의 결과는 런던의 이미지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셋째, 다차원의 제도적·정책적 지원이다. 런던 시(GLA), 케이브(CABE), 영국 헤리티지(English Heritage) 등을 포함하여 런던에서 도시·건축·디자인 관련 정책을 연구하는 민관 단체의 숫자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 단체들은 단순히 하나의 아름다운 건물이 아니라 런던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개발할 수 있도록 개인과 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조율한다. 개인이나 디자이너로서는 간섭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다양한 정보와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환영받는 측면이 강하다.
특히 21세기에 들어서 개발한 도시 이미지나 도시경관과 연관된 정책들은 실제적인 런던의 상황에 근거를 두고 매우 과학적이고 입체적인 분석방법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서, 최근에 발간된 《런던 도시경관 관리방안》(London View Management Framework, 2007)은 런던의 주요 랜드마크들을 시각적으로 어떻게 보호하고, 동시에 개발을 장려하면서 새로운 도시경관을 형성하는지 체계적 틀거지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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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
도시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미적 가치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한 도시가 드러내는 이미지는 경제·사회와 문화·예술 등을 통하여 구현된 총체적 결과물이다. 또 이렇게 형성된 이미지의 성패는 거주자와 방문자의 경험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 이미 지난 20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 도시의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으로 자리 잡았다. 따라서 도시가 거주자, 방문자, 투자자 등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시 이미지 구성의 핵심 중 하나인 랜드마크는 일순간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조각품이 아니라, 특정 장소와 도시의 정체성을 대변하면서 지역적 자긍심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징적 존재다. 하나의 랜드마크를 만드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현재 런던에서 진행 중인 도시, 건축, 디자인 관련 프로젝트들과 런던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의 의견을 종합해볼 때 단기적으로는 올림픽이 열리는 2012년, 장기적으로는 2030년까지 런던의 모습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변할 것이 틀림없다.
예를 들어서, 연재 1회(<너울> 197호)에서 소개한 거킨이 위치한 뱅크 지역에는 몇 년 안에 지금과 전혀 다른 스타일의 초고층 건물들이 집중적으로 건립될 예정이고, 시청 주변은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공공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연재 2회(<너울> 198호)에 소개한 테이트 모던은 기존 건물과 연계한 제2 테이트 모던 건립계획과 디자인을 확정한 상태다. 연재 4회(<너울> 200호)에 소개한 카나리 워프 역시 금융 중심지의 이미지를 강화하면서 현재의 배로 규모가 커질 예정이다. 이 연재에서 다루지는 않았지만 2012년 올림픽 파크 일대를 포함하여 킹스 크로스, 화이트 시티, 엘리펀트 캐슬, 스트라트포드 시티 등 런던에서는 현재 유럽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대규모 재개발 프로젝트들이 진행 중이다. 이들이 하나 둘씩 완공되면서 런던의 이미지는 진화를 거듭할 것이다.
런던의 변화에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또 실패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비판론자들도 런던이 정체되어 있으면 다른 도시와 경쟁해 살아남을 수 없음을 인정한다. 즉 런던의 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앞으로 있을 변화에 부정적이기보다 긍정적인 이유는 런던이 변화의 분명한 ‘기준’과 ‘방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서 각각의 시대에 맞게 기준과 방향을 새롭게 설정할 수 있는 ‘노하우’와 ‘인프라’도 축적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런던의 변화는 몇몇 정치인이나 디자이너가 내리는 일회성 처방이나 이벤트가 아니다. 런던의 이미지가 때로는 급진적으로 변하는데도 도시의 정체성이 훼손되지 않는 분명한 이유다. 체계적이고 다차원적 정책, 엄격한 기준, 치열한 논의를 통하여 고전과 현대가 누적된 도시, 바로 런던이다. 21세기에도 런던의 이미지는 계속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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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원고는 문화관광연구원의 기획연재로 2008년 5월호에 게재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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